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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를 사랑합니다

전 제주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딱 한 번의 사랑을 해 보았습니다.

내 나이 스무 살 되던 해, 저는 한 주점을 하고 있었죠.

우연히 시장을 지나치다가 정말 미모의 한 여인을 마주치게 되었다. 난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지나쳤다.

며칠이 지난 후 한 목욕탕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때 역시 ′안녕하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헤어졌다.

다음날도 난 목욕탕에 가게 되었다. 이런 만남이 되풀이되면서 우린 얼굴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이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내 차를 타게 되었다.

˝가시는 목적지까지 오늘은 제가 모셔다드리죠.˝ 라고 한마디 던지고 여인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바래다 드리고 헤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매일같이 목욕탕 가는 시간이 맞아서인지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서까지 아직도 서로가 똑같은 일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지였기에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저도′와′ 하고 입을 벌리고 있을 정도로 순수하고 교양이 넘치는 미인이었다.

벌써 세월이 흘러 삼 년쯤 되던 어느 날, 난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요?”라고.

“전 시내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박수진이에요.”라고 말을 해주었다.

“네. 그러세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받고서 “그럼 사는 동은 어디죠?”라고 물었다.

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고 가족은 둘 나머지는 일본에 모두 계십니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 그러세요.” 우린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오래된 연인처럼 편안한 대화를 즐기고 있었었다.

의도적으로 매일 같이 목욕탕을 출근하다시피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어때요? 괜찮으시다면 식사라도 같이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래요. ′좋아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우린 이로써 만난 지 삼 년 만에 따뜻한 음식 대접을 받았다. 이유는 삼 년 동안 자기 집까지 바래다주고 태워다 줘서 고맙다는 그 말 한마디였다.

그래서 조금은 서운했지만 ‘네’ 하고 속으로 대답하였다. 시간은 흘러갔다. 이제는 서로 전화로

“내일 몇 시에 목욕탕에 가죠”라고 물으면서 다녔다. 아주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하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었는지요?”라고 물었더니 오십 살이라고 하였다.

난 그냥 “농담도 잘하시네요.”라고 대답했다.

'제 신분증을 보세요. 나이도 맞고 어머니 나이가 82세 에요.'

나는 그 여인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저렇게 아름답고 젊어 보이시는 분이 오십 살이라니 한참 침묵이 흘렀다.

한마디 충격적인 말이 또 흘러나왔다.

“저는 중3 때 납치돼서 일본으로 끌려가서 원하지도 않은 시집살이를 하면서 아이도 셋이나 낳고 이혼하고 제주도로 넘어왔어요. 전 지금 마음을 비웠고 홀어머니 모시고 살다가 생을 마칠까 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난 생각했다. 겉으로의 판단은 앞으로는 절대 하지 않을 거라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럼 나에게 또 한 분의 어머니가 생긴 것이다. 어머니하고 나이가 비슷하시므로 난 한편으로는 좋았고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원래 목적은 장가가려고 했던 것인데 어머니라니 혼자 쓴웃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 여인이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찬물에 세수를 꼭 하시고 아주 규칙적이고 계획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이었다.

편도가 안 좋아서 수술할 때 같이 얼굴에 주름 제거를 하는 수술을 해서인지 주름 하나 없고 기미 주근깨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말 그대로 마네킹 같은 사람이었다.

만남은 행운이었다. 우린 서로 알게 되었고, 편하게 지냈고, 할머니가 불편하시면 병원에 모셔다드리면서 한 지붕 아래에서 유연하게 살게 되었다.

난 내가 살아야 할 방이 필요했었다.

' 전세방에 혼자 사느니 좀 불편하시더라도 들어와서 같이 사세요.'

먼저 저에게 물어 와서 저는 승낙을 하고 한 지붕, 한마당을 쓰면서 살게 되었고 생활도 식사도 같이하게 되었다.

운명이 장난인지 모르겠다. 이제 4년이 지나던 어느 날 평소에 술 한 잔도 못 하시는 분이 술에 취해서 제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들어와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비록 지금은 이혼하고 추한 모습이었지만 철천지원수 같은 전 남편이 나를 납치 하지만 않았더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해 보았을 것을, 하면서 나에게 한탄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흐느끼는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제가 말동무가 되어 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난 밤새 운명 같은 한 여인의 울음을 들어 보았다.

너무나 슬펐다. 아니 죽이고 싶었다. 왜 힘으로 여자를 정복하려 드는지 아무리 현실을 비판해도 나 역시 힘없고 돈이 없어서 현실에 안주해야만 했다.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시는 임을 어떤 식으로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어깨 마사지해 드리고 발 마사지를 두 분 모두 매일같이 해 드렸다.

할머니하고 임도 좋아하셨다. 오랜만에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걸 보았다. 정말 좋았다. 환하게 웃으시니까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난 벌써 상대방 집에 자식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두 분이 항상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깐 마음이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에서 집안 어른이 오셨다. 이제 제주도 정리하고 할머니 모시고 일본으로 가셔서 사시지 않겟느냐는 말이 들렸다.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돈도 필요 없고 저 젊은 사람처럼 착하게 사는 친구가 내 사위라면 좋겠어! 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다시는 한국 땅에 오지 말게, 하시면서 할머니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리곤 가버렸다.

다시 집안이 한동안은 침묵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맺는말 갖기도 하다.

며칠이 지나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너무도 슬펐다. 우린 서로 며칠을 눈물로 보냈다.

고귀하신 어머니가 세상을 떴노라, 통곡하시는 이 여인이 한 많은 세상을 어떻게 하시고 벌써 떠나시는 것이 옵니까? 들어도, 들어도 눈물만 나올 뿐이다.

그 큰집에 우린 둘이 남게 되었다.

다시 세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뭐랄 것도 없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한가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운명적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 껴안아 볼 수도 없어 가운데 바다가 있어 건너가지 못하는 벽 때문에 서로 고귀하고 힘들고 서로 울며, 그런 세월을 보내었다.

한 번도 서로에게 아픈 말, 힘든 말 해 본 적은 없지만, 우린 저 하늘에 가서 나이를 초월한 사랑을 해 보리라고 말을 했다. 비극적인 사랑이겠지만 세상 가장 소중한 것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했다.

지금까지 10년째 살고 있다. 아무 일 없는 연인처럼 애인처럼 가족처럼 엄마처럼 누이처럼 때론 아줌마처럼 나도 남편이 될 때도 있고 아들이 될 때도 있고 친구가 될 때도 있는 그런 운명적인 삶을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말 한마디. 사랑해요./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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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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